경제학이 가르치는 가장 기본적인 짝이 있다. P와 Q. 가격과 물량이다. 공급이 줄면 공급곡선이 왼쪽으로 밀리고, P는 오르고 Q는 줄어든다. 이게 교과서의 이야기다. 2026년 2월부터 호르무즈 해협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 교과서의 변주다. 그런데 변주의 방향이 직관과 어긋난다.
평시 호르무즈는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원유와 석유제품을 흘려보냈다.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3분의 1이다. 한국이 쓰는 원유의 대부분도 이 좁은 수로를 지난다. 이 물량은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왜 대체가 어려운지는 지도를 보면 분명하다. 사우디·UAE·카타르·쿠웨이트가 하루에 길어 올리는 원유와 LNG는 대부분 이 수로 하나로 수렴된다. 파이프라인 우회로가 일부 있지만, 용량은 전체의 20% 수준이다. 아시아로 가는 배는 수에즈를 돌거나 희망봉을 돌 수 없다. 호르무즈는 우회로가 없는 병목이고, 그래서 지정학의 언어에서 '초크포인트'라 불린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면서 이 흐름이 얼어붙었다. 6주 뒤 통행량은 정상 대비 10분의 1 수준. 약 800만 배럴이 매일 갈 곳을 못 찾고 바다 위에서 떠돈다. 그 결과 WTI는 배럴당 100달러 근처에 머문다. 교과서 그대로 Q가 줄고 P가 올랐다.
이란은 완전 봉쇄를 원하지 않았다. 전면 봉쇄는 이란 자신도 굶어 죽이는 선택이다. 이란의 원유 수출도 같은 수로를 지난다. 그래서 꺼낸 카드가 통행료다. 배럴당 0.5~1달러, VLCC 한 척당 약 200만 달러. 내면 흘려보내고, 안 내면 막는다. 물량을 완전히 끊는 대신 통과세를 붙이는 방식이다.
교과서 용어로 다시 쓰면 이렇다. 완전 봉쇄는 공급곡선을 직접 왼쪽으로 민다. Q가 급감하고 P가 폭등하며 공급자도 함께 파산한다. 반면 통행료는 단위 원가에 세금을 얹는 형태다. Q는 일부 유지되고, P는 상승하되 그 상승분의 일부가 이란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공급곡선을 미는 대신 세금 쐐기를 박는 그림이다.
이 구조가 이란에게 왜 합리적인지는 분명하다. 공격당한 뒤 외환도, 정상 수출 경로도 잃은 이란에게 남은 레버리지는 '통과시켜주지 않을 권리' 하나다. 이걸 현금으로 환산하는 가장 깨끗한 방법이 통행료다. 구매국들도 완전 중단보다는 통행료를 선호한다. 단가는 올라도 물량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양쪽이 합의하면 양쪽 다 현금흐름이 산다. 적대적 구도처럼 보이지만 구조는 협력에 가깝다.
다만 통행료는 국제법적으로 깨끗한 제안이 아니다. 유엔 해양법상 국제 해협의 통과 통항권은 무상이어야 한다. 수에즈나 파나마 운하는 인공으로 건설된 수로라 통행료를 징수할 근거가 있지만, 호르무즈는 자연 해협이다. 국제해사기구는 이 제안을 "국제 항해 자유 원칙의 위반"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구매국들이 테이블에 앉는 건, 법보다 배가 먼저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정제소는 원유가 없으면 멈추고, 보험사는 전쟁 배제 조항을 걸어 놓고도 결국 보험료만 올린 뒤 선박을 통과시킨다.
이상한 지점은 여기서 시작된다. 2026년 4월 12일, 미 해군이 이란 항만을 봉쇄했다. 통행료 협상이 흘러가는 와중에, 협상 테이블의 바깥에서 미국이 Q를 더 줄이는 쪽에 가담한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이 상황을 두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표현했다. 에너지 안정을 공언하던 입장에서 몇 달 전이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말이다.

직관적으로 이건 미국 손해다. 유가가 오르면 소비자가 피해를 보고 인플레이션이 재발한다. 물가에 제일 민감한 정권이 자발적으로 Q를 깎는다는 건 상식과 맞지 않는다. 이란 봉쇄는 그렇다 쳐도, 사우디·UAE·카타르 항로를 포함한 Q 억제에 미국이 발을 담근 이유는 뭔가.
가장 흔한 해석은 "고유가를 원해서"다. 배럴당 100달러면 미국 셰일에 연간 약 630억 달러의 추가 현금흐름이 돈다. 달러는 유가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에너지 순수출국이 된 뒤로 미국의 통화는 유가 상승을 싫어하지 않는다. 숫자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이 해석은 다른 지점에서 무너진다. 같은 행정부가 OPEC에 줄기차게 증산을 요구한다. 통제된 고유가를 원한다면 증산 요구를 할 이유가 없다. 증산 요구는 P를 낮추는 방향이고, 자발 봉쇄는 P를 올리는 방향이다. 두 행동은 정면으로 충돌한다. 고유가 수혜는 부산물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럼 목적은 뭔가. 미국이 호르무즈의 Q를 줄이는 쪽에 가담해서 얻어내려는 게 있다면, 그건 P의 수익도 Q의 복구도 아닌 제3의 무엇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제3의 것은 호르무즈 자체가 아니라 호르무즈 밖에서 찾아야 한다. Q가 비워지는 건 그 자리에 무엇을 채울지에 대한 선택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교과서는 공급곡선의 이동과 가격의 움직임까지만 그린다. 실제 무대에서는 그 뒤에 한 겹이 더 있다. Q를 누가, 어느 공급원에서 채우느냐다. 이 질문을 꺼내는 순간 호르무즈 사태의 그림이 바뀐다. 비어 있는 800만 배럴은 누군가가 채울 자리이고, 그 선택이 이 위기의 진짜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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