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미국이 알래스카 천연가스에 얼마나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다뤘다. 취임 첫날 단독 행정명령, 440억 달러 LNG 프로젝트, 아시아 바이어들과의 계약. 방향은 읽히는데, 이유가 빠져 있다. 원유도 있고 셰일도 있는데, 왜 굳이 천연가스까지 손을 뻗는 걸까.
3월 13일, 미국은 이란 Kharg Island의 군사시설 90곳 이상을 타격했다. 트럼프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폭격"이라 불렀다. 하지만 원유 인프라는 의도적으로 건드리지 않았다. 위성사진에는 수일 뒤에도 유조선이 정상 정박해 있었다. 이란의 반응은 억제됐다.
5일 뒤인 3월 18일, 이스라엘이 South Pars 가스전과 Asaluyeh 시설을 직접 타격했다. 이란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이란 대통령은 "통제 불능의 결과가 전 세계를 집어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외무장관은 "ZERO restraint" — 자제는 없다 — 라고 선언했다. IRGC는 걸프 아랍국의 에너지 시설을 "직접적이고 정당한 표적"으로 지정했다. 같은 날, 이란은 카타르 Ras Laffan LNG 시설을 미사일로 보복했다. 이후 UAE, 사우디, 쿠웨이트 에너지 인프라에 연쇄 공격이 이어졌다.
원유 시설을 때렸을 때와 천연가스 시설을 때렸을 때의 반응이 이렇게 다른 데는 이유가 있다.

이란은 세계 2위 천연가스 매장국이다. 하지만 그 가스를 거의 전량 국내에서 쓴다. 이란 전력의 86%가 천연가스에서 나온다. 난방, 석유화학 산업도 마찬가지다. South Pars 하나가 이란 가스 생산의 약 70%를 담당한다. 원유는 수출 수익원이다. 제재 하에서도 밀수 네트워크로 돌아간다. 하지만 가스가 끊기면 전기가 끊긴다. 공장이 멈춘다. 도시가 멈춘다. 원유는 주머니고, 천연가스는 심장이다. 심장을 때리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이건 이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동 분쟁으로 걸프 지역 원유 생산은 하루 1,000만 배럴 이상 감소했다. IEA는 9개국에 걸쳐 40개 이상의 에너지 자산이 심각하게 손상됐다고 발표했다. Brent 유가는 전쟁 전 배럴당 73달러에서 120달러까지 치솟았다. 글로벌 LNG 공급의 17%가 카타르 피격으로 중단됐다.
원유 가격은 폭등했다. Brent가 73달러에서 120달러까지 뛴 건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천연가스다.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는 동안 미국 국내 가격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유럽 가스 가격이 두 배로 뛰고, 아시아 LNG 선물이 51% 뛸 때, 미국 국내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원유에서는 글로벌 가격에 연동되지만, 천연가스에서는 절연돼 있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셰일이 만든 천연가스 자급 구조 덕분이다.
원유에서는 가격 쇼크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천연가스에서는 피했다. 이 절연 구조를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천연가스가 이렇게 중요해졌을까. AI 때문이다. AI는 전기를 먹는 하마다. AI 모델이 커질수록 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연산량은 매년 몇 배씩 뛴다. 이 전기를 만들어낼 발전소가 필요하고, 발전소를 돌릴 연료가 필요하다. 결국 에너지 문제다.
미국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현재 약 62 GW다. 2030년까지 거의 3배로 늘어난다. GPT-4 한 번 훈련하는 데 50 GWh가 든다. 빅테크 4사(Microsoft, Google, Amazon, Meta)가 미국 데이터센터 용량의 42%를 장악하고 있고, 2026~2027년에만 16개 기가스케일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예정돼 있다. 이 전력을 어디서 가져올 것인가.
원자력이 떠오른다. 탄소 제로, 기저부하 안정, 대규모 발전. 이론적으로는 완벽하다. 빅테크도 알고 있다. Microsoft는 Three Mile Island 원전 재가동에 투자했고, Google은 Kairos Power와 SMR 계약을 맺었고, Amazon은 5 GW 규모의 원전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하지만 숫자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국에서 가장 최근에 완공된 원전은 Vogtle 3·4호기다. 건설에 11년 이상, 비용은 초기 예산 140억 달러의 2.5배인 약 350억 달러가 들었다. 영국 Hinkley Point C는 10년째 건설 중이고 예산은 이미 2배를 넘겼다. SMR(소형모듈원전)은 미국 첫 상업 프로젝트였던 NuScale이 비용 급등으로 취소됐다. 빅테크의 원전 투자 중 가장 빠른 것이 Microsoft의 TMI 재가동인데, 그것도 2028년이다. Amazon의 원전은 2039년 예정이다.
AI 전력 수요는 "지금" 폭증하고 있다. 원자력은 "지금" 답을 줄 수 없다.
신재생은 어떤가. 태양광과 풍력은 해가 뜨고 바람이 불 때만 전기를 만든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365일 멈추지 않는다. 배터리 저장?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의 저장 시간은 1~4시간이 일반적이다. 데이터센터가 요구하는 독립 전원 운영 시간은 최소 수십 시간이다.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다.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이유다.
천연가스 발전소는 2~3년이면 짓는다. 원전 10년 이상, 대형 태양광도 그리드 연결 대기까지 합치면 수년이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빠르다. 지금 미국에서는 46개 데이터센터가 자체 on-site 천연가스 발전소를 짓고 있다. 합산 56 GW. 오하이오에서는 330억 달러 규모의 9.2 GW 가스발전소+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천연가스는 더 이상 "쇠퇴하는 bridge fuel"이 아니다. 미국 AI 성장의 사실상 backbone이 되고 있다.
"지금" 대규모 기저부하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에너지원은 천연가스뿐이다. 원자력은 미래의 답이 될 수 있지만, AI는 미래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건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동 분쟁을 겪으면서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중동 원유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나오고 있다. 호르무즈 봉쇄로 원유 수급이 흔들리는 걸 직접 목격한 마당에, 에너지 공급처를 다변화하고 싶은 건 당연하다. 실제로 미국은 이미 나서고 있다. 알래스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깔고 아시아에 LNG를 공급하겠다는 계약이 붙고 있다. 아시아 입장에서는 꽤 매력적인 답안이다. 아시아 입장에서는 중동 리스크를 줄이는 대안이고, 미국 입장에서는 에너지를 통한 아시아 동맹 강화다.
결국 큰 그림은 이렇다. 미국은 셰일로 원유를 쥐고, 천연가스까지 장악하려 한다. 원유와 천연가스 — 화석연료의 양대 축을 모두 쥐면 무엇이 가능한가.
에너지 가격은 모든 물가에 전이된다. 에너지를 쥔 자가 인플레이션을 쥔다. 유가가 오르면 운송비가 오르고, 원자재가 오르고, 식품이 오른다. 천연가스가 오르면 전기료가 오르고, 공장 가동 비용이 오른다. 에너지 가격의 결정권을 쥐면 글로벌 물가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다. 달러 패권에 에너지 패권까지 더해지는 구도다.
물론 한계는 있다. 에너지 가격을 올려서 다른 나라를 압박하면, 미국 내 인플레이션도 오른다. 이 딜레마는 호르무즈 시리즈에서 다뤘다. 그리고 원자력과 신재생이 영원히 답이 안 되는 건 아니다. 10년, 20년 뒤에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 AI가 전력을 먹어치우고, 중동이 불타고 있는 이 순간 — 천연가스를 대체할 선택지는 없다.
이전 글에서 미국이 알래스카에 440억 달러를 걸고, 취임 첫날 단독 행정명령을 내리고, 아시아 바이어들을 끌어모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셰일의 성숙기가 오고, AI가 전력의 방정식을 바꾸고, 중동 경쟁자가 무력화된 지금이 창(window)이다.
미국이 이 창을 놓칠 리는 없다. 놓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적어도 방향은 명확하다.
'Acqui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호르무즈 통행료 ② (0) | 2026.04.15 |
|---|---|
| 호르무즈 통행료 ① (0) | 2026.04.14 |
| 알래스카 ① — 미국이 천연가스 패권을 완성하는 법 (0) | 2026.03.26 |
| 해협이 열리면 끝일까 (feat. 유가) (0) | 2026.03.25 |
| 판단 외주화 (0) | 2026.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