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Anthropic이 Claude Cowork를 공개하자 48시간 만에 소프트웨어 시가총액 $285B가 증발했다. 시장은 이것을 "SaaSpocalypse"라 불렀다. 3월에는 Atlassian이 직원 10%를 잘랐다. "AI에 재투자하기 위한 자기자금 조달"이라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같은 분기에 발표된 Atlassian 실적은 클라우드 매출 26% 성장, 첫 $1B 분기, 장기계약잔고 44% 가속이었다. 주가는 70% 녹아내리는 중인데 매출은 역대 최고 속도로 자라고 있다. 이 괴리가 생각의 출발점이다.
소프트웨어 몰락론의 논리는 단순하다. LLM과 코딩 에이전트가 누구나 앱을 만들 수 있게 만들었고, AI 에이전트 한 개가 인간 다섯 명분 일을 한다면 기업은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다섯 장이 필요없다. 시트 기반 구독이 매출의 근간인 SaaS에게는 근간이 흔들리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는 맞다. 그러나 이 논리는 한 가지 숨은 전제를 깔고 간다. SaaS 매출의 대부분이 시트 기반이고, 그 자리를 AI가 직접 대체한다는 전제다. 진짜 질문은 여기다. 소프트웨어 기업 매출 중 AI가 당장 갉아먹을 수 있는 비중은 얼마인가.

표에서 얼마만큼의 비중을 AI가 대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소프트웨어 기업의 해자는 크게 네 갈래로 갈린다. 데이터 락인, 워크플로우 락인, 배포 채널, 규제·보안 대응이다. 이 넷 중 AI가 직접 깎을 수 있는 층은 생각보다 좁다.
데이터 락인부터 보자. Salesforce의 Data Cloud는 50조 레코드 위에서 돈다. Snowflake와 Databricks는 기업 데이터를 묶어두는 것 자체가 사업이다. AI는 이 층을 대체하는 쪽이 아니라 이 데이터를 소비해야 하는 쪽이다. 기업 데이터 없이는 기업 업무를 할 수 없다. Databricks가 비공개 기업 가치 $134B를 받아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데이터를 가진 쪽이 AI 시대의 승자라는 건 이미 가격에 반영되는 중이다.
워크플로우 락인의 대표는 ServiceNow다. 이 회사가 관리하는 워크플로우 인스턴스는 850억 개, 처리하는 트랜잭션은 연 7조 건이다. 이건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조직 그 자체다. AI는 이 위에 얹혀 더 빨리 돌게 할 수는 있어도, 조직 프로세스 자체를 쉽게 걷어내지는 못한다. 감사 보고서가 에이전트의 즉흥 판단으로 굴러가길 원하는 감사인은 없다.
배포 채널 쪽은 더 가혹하다. Microsoft 365는 이미 Fortune 500의 90%에 들어가 있고, 엔터프라이즈 테넌트의 95%에 Copilot이 임베드돼 있다. 이걸 걷어내고 "내가 만든 AI 도구"로 바꾸는 조직 비용은 만드는 비용의 수십 배다. Adobe Creative Cloud도 마찬가지다. 이미 디자이너 책상 위에 앉아 있는 도구에 Firefly가 얹히자 새 ARR의 11%를 혼자 만들어냈다. 배포 채널은 AI로 갉히는 층이 아니라 증폭되는 층이다.
규제·보안은 가장 단단하다. Anthropic이 2025년 10월 Salesforce와 확장 파트너십을 맺으며 공개한 조항 중 하나가 이것이다. Claude의 모든 트래픽은 Salesforce 가상 사설 클라우드 안에서만 흐른다는 조항. 금융·의료·보험에서 AI를 쓰려면 AI 벤더가 SaaS 쪽 보안 경계에 맞춰줘야 한다는 뜻이다. AI 벤더가 SaaS를 대체하는 그림이 아니라, 기존 SaaS의 신뢰 경계 안쪽으로 들어와 얹히는 그림이다.
나 역시 시중 어떤 포트폴리오 트래커도 내 자산 구조를 담지 못해서, 결국 LLM과 코딩 에이전트의 힘을 빌려 데스크탑 앱을 직접 지었다. 데이터 수집, SQLite 저장소, FastAPI 게이트웨이, Electron 화면까지 한 사람이 끌고 나갔다. 몇 년 전이라면 불가능한 분량이었다.
그 경험에서 알게 된 것은 만드는 것은 시작일 뿐이라는 점이다. 앱을 돌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진짜 비용이 붙는다. 데이터 일관성, 스키마 변경, 크론잡 복구, 오류 처리, 버전 호환. 도구 하나를 혼자 쓰는데도 관리가 본업이 된다. 이걸 조직 단위로 확장한다고 생각해 보자. 컴플라이언스 감사, 권한 관리, 감사 로그, 사고 대응, 규제 신고까지 얹힌다. 만드는 난이도는 떨어졌지만 운영과 책임의 난이도는 그대로거나 오히려 올랐다. 그래서 내가 개인용 도구를 자작했다는 사실은 SaaS 몰락의 근거가 아니다. 그것은 "월 $20짜리 수평 SaaS 구독 몇 개를 해지했다"는 뜻일 뿐이고, 바로 이 층이 실제로 녹고 있는 층이다.
단일 기능 수평 SaaS, 얇은 래퍼 제품, 기능 한두 개만 묶어 팔던 보일러플레이트 구독은 명백하게 빠지는 중이다. 미국 IT 예산 서베이에서 응답자 40%가 전통 SaaS 구독에서 예산을 떼어 에이전트 플랫폼과 LLM 토큰 사용으로 재배치했다고 답했다. 여기서 빠진 돈은 돌아오지 않는다. 몰락하는 것은 도구 한 겹이고, 살아남는 것은 데이터·조직·규제의 세 겹이다. 몰락론이 이 둘을 "SaaS 전반"이라는 한 단어로 묶어 부르는 데서 착시가 태어난다.
시장이 가장 무서워한 단어는 시트 압축이었다. 인간 다섯이 쓰던 라이선스 다섯 장이 에이전트 한 개로 줄어든다는 이야기. 그러나 이 이야기가 도달한 종착점은 매출 소멸이 아니라 과금 단위의 이전이다. Salesforce의 Agentforce와 Slack은 지금까지 24억 건의 자율 에이전트 작업을 처리했고, 이 숫자가 분기마다 57%씩 늘고 있다. 시트가 아니라 작업량이 과금 단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청구서를 발행하는 쪽이 여전히 Salesforce라는 사실이다. 에이전트를 돌리는 하부 모델이 Claude이든 GPT이든 상관없다. 고객 관계, 데이터, 조직 프로세스를 쥔 쪽이 인터페이스를 독점하고, 인터페이스를 독점한 쪽이 청구서를 쏜다. AI 모델 벤더는 그 밑의 하부 공급자가 되고, 소프트웨어 기업은 시트 판매자에서 에이전트 운영자로 확장된다. ServiceNow의 Now Assist가 AI 제품 연간계약가치 $1B을 목표로 달려가는 것도 같은 구조다. 시트 기반에서 작업량 기반으로의 재가격은 매출 소멸이 아니라 시트 한도에 갇혀 있던 매출 상한의 해제이고, 그 상한을 여는 주체는 여전히 소프트웨어 기업 쪽이다.
그럼에도 시장은 이 층들을 같은 저울에 달았다. Atlassian 주가는 70% 가까이 녹았지만 클라우드는 첫 $1B 분기를 찍었다. ServiceNow 멀티플은 50배대에서 22배대로 압축됐지만 구독 성장률은 여전히 20%대다.
Salesforce는 연초 대비 30% 넘게 빠졌지만 Data Cloud ARR은 전년대비 120%로 달린다. Salesforce의 Marc Benioff는 Q4 실적 발표에서 SaaSpocalypse 내러티브를 공개적으로 조롱했다. 숫자가 자기편이라고 믿는 경영자의 말투였다. 내러티브가 숫자를 한 분기 앞질러간 상태다. 4월 들어 골드만이 돌린 기관 서베이에서 소프트웨어 비중을 늘리겠다는 응답이 49%로, 2017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먼저 움직이는 돈은 이미 착시를 가격에서 걷어내기 시작했다.
Salesforce Ben, "Huge Agentforce Growth in Salesforce Q4 as Benioff Mocks 'SaaSpocalypse' Narratives" — https://www.salesforceben.com/huge-agentforce-growth-in-salesforce-q4-as-benioff-mocks-saaspocalypse-narratives/

몰락이라는 단어는 통째로 틀렸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과육을 먹기 위해 껍질이 깎이는 과정에 가깝다. AI 공급이 폭증하면서 소프트웨어의 얇은 껍질, 즉 단일 기능 수평 SaaS가 빠르게 벗겨진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데이터·워크플로우·배포 채널·규제 대응이라는 두꺼운 과육이 그대로 남아 있고, 오히려 이전보다 또렷하게 드러나는 중이다. 껍질이 깎이는 소리를 몰락의 굉음으로 오독하지 말아야 한다.
이 흐름을 따라가며 봐야 할 지점은 세 가지다. 기업 매출 중 시트에서 작업량으로 이전된 비중, AI 제품 연간계약가치가 전체 매출에서 두 자릿수를 찍는 시점, 얇은 수평 SaaS 층의 피인수·소멸 파동이 이어지는 길이. 이 세 숫자가 명확해질 때쯤이면 지금의 착시 가격은 이미 닫혀 있을 것이다. 소프트웨어 기업은 몰락하는 중인가. 지금까지의 숫자로는 아니다. 몰락하는 것은 한 층이고 드러나는 것은 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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